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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바다 성산포4 .이생진 [낭송.헤이데이]

裸談 2019. 7. 29. 15:57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기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나타난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