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메모

생각16 아들 z에게

裸談 2012. 7. 30. 18:12

 

아들아,

6학년 때에 인터넷 카툰에 올렸던 만화 기억나니?

 

너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많은 아이들이 공유하는 공간에

끔찍하게 피흘리며 싸워대는 그런 만화는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중지했던 기억 말야.

 

그런데 어제는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너의 카툰을 보았단다.

중1이 된 너에게서 아직도 그런 끔찍한 그림들이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론 마음이 아파 글을 쓴다.

 

지식이 짧은 아빠는 인터넷을 부랴부랴 찾아가며

너에게 옳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고파 헤맸단다.

 

한편으론 한창 그럴 나이라고 이해도 해보고

한편으론 생존게임류의 영화, 만화나 글들이

유행처럼 번지다 너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화가 나기도 했지.

 

엄마아빠는

우리 아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동안 이야기도 많이 했었고

그동안의 성장과정에서도 의젓하게 깊고 넓은 대화를 해왔던 터라

그런 것 정도에는 마음도 주지 않으리라 기대 했었어.

 

하지만

어제는 많이 당황했고 어떤 식이든 또 다른 대화가 필요함을 느꼈단다.

 

너에게 당부하기 전에

잔인하다는 말과 공포스럽다는 말을 구태여

아빠식으로 해석을 붙여보려 한다.

 

<공포스럽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서스펜스suspense 같은 것?

suspense의 정확한 뜻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줄거리 전개가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박감,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다’ 란다.

 

공포물에는 <잔인한 것>과 <잔인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할 수 있겠더라.

 

<잔인하다>는 것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해 장면 등이

고스란히 등장하는 것 굳이 안 그래도 되는 것을 말야.

역겨움 또는 인상을 찌푸리며 보게 되는 흉측한 장면을

그대로 노출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잔인하지 않은 것>은 식스센스나 디아더스 같은 것일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으면서

오싹함을 선물하는 것.

 

둘의 공통점은 무섭다는 것

둘의 차이점은 역겨움과 역겹지 않다는 것.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차이 같은 걸 느끼겠지?

 

그렇다면

네가 그리고 있는 만화는 어느 쪽일지?

 

예를 들어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고 피범벅의 잔인한 그림을 잘 그리고 자주 그리며

주로 잔인한 이야기를 생생하고도 재미있게 해주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 아이와 네가 단둘이 있게 된다면 너는 느낌이 어떨까?

그 아이가 옆에 단둘이 있다는 게 불편해지지 않을까?

그러한 순간에 너는 어떤 상상을 하게 될까?

 

<맹모삼천지교>라는 말 잘 알지?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 세 번을 이사했다는 이야기.

묘지 근처에 살 때는 상여 나가고 장사를 지내는 흉내를 내서 이사 하고

시장 주변에 사니까 이제는 어린 나이에 장사치들의 흉내를 내는 맹자 때문에

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다는, 그랬더니 맹자는 글을 읽는 선비들을 흉내 내면서

훌륭한 학자로 성장했다는 얘기.

 

성장기의 어린 나이에는 그만큼 보고 듣고 생각하는

주변 환경이 아주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지.

 

엄마아빠도 마찬가지란다.

 

우리가 오산에서 이사를 나온 것은 네가 학교에 들어 갈 무렵이었지.

오산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 근처가 열악했단다.

 

오로지 너의 학교생활을 위해서 이사를 결정했는데

어렵사리 이사한 그곳은 또 너의 아토피에 좋지 않은

차량 소음, 비행기 소음, 도로먼지 등이 괴롭혔지.

 

그래서 또 이사를 한 곳이 한적한 신미주아파트였는데.

그곳은 너에게 좋은 공기를 제공했고

초등 학생시절 내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시골스런 환경이라 좋았다.

 

그런데 그곳 또한 중학생 이상부터는 좀 힘든 환경이었잖아.

학교도 하나뿐인데다가 통학하기도 애매한.

그래서 부랴부랴 이사한 곳이 지금의 여기이고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엄마가 가장 좋아한 것은 도서관이 가깝다는 것.

 

책 읽기를 좋아하는 너.

도서관이 가까워서 좋았다는 걸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포물이나 환타지만을 즐기는 네 모습을 상상해서였을까

아님 좋은 책 속에 푹 파묻혀 있는 네 모습을 상상해서였을까

대답은 확연하지 않니?

 

방학 동안에 남들 다하는 보충수업까지 생략하면서

학기 중에는 잘하기 힘든 독서를 실컷 하라고 도서관에 보내주는 것은

그만큼 좋은 책 읽기가 너의 삶을 좋게 살찌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나중에 네가 하는 모든 일들의 아이디어가 바로 그 것에서 나오고

순간순간 닥치는 모든 일들의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바로 지금의 책 읽기가 쌓여서 해주는 거란다.

그 부분은 너 또한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함께 선택한 것이고.

 

아들아

너보다 더 높은 성적을 갖고

너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아이들은 많단다.

하지만 엄마아빠는 너의 성적을 갖고도 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정도면 잘 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계획성 있게 잘 관리하는 생활이 좋았단다.

하지만 아쉬운 것을 몇 가지 지적은 했구나.

왜냐하면 아직은 더 발전해야 하고

밑으로도 있지만 위로도 아직은 많은 부분이 여분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늘상 의젓한 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아빠가 너에게 탓을 하고 불만을 말한다면

대한민국 1등이 되기 전까지는 끝날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기본이란 것이 있고 정도라는 것이 있어서

탓은 아니되 아쉬움은 말했었지.

 

무엇보다도

엄마아빠는 지식으로 일등이 되는 것보다는

지혜로움으로 일등이었으면 좋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책의 영향을 받고

영화광인 너에게 좋은 영화의 영향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글을 쓴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z에게 아빠가

2012년 7월 어느 무더운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