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쓴詩

[자작시] 겨울 지하철에서 문득, 미래의 화석을 보다

裸談 2011. 11. 24. 12:07

 

 

겨울 지하철에서 문득, 미래의 화석을 보다         -나담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내달리는 건 결코 무엇을 향한 그리움만은 아니다-

 

끝도 없이 이어진 이 팽팽한 길에

어디 온전한 숨결만 남았으리

너 나 없이 지치고 피로한 얼굴

더 이상 생각의 깊이는 자라지 않아

방향도 없이, 어디일까?

가는 곳 모를 씨알들 둥둥 넘쳐나고

 

그래도 모쪼록 모두 건강하게 잉태되길 바랬지

밤새 앓던 이빨 하나 솎아내고 한 치 작아진 몸뚱이나마

호기당당 으르렁대며 개 입 벌리듯 컹컹한 터널을 지나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앞 뒤 서로 엉키어 끈끈하게

오늘도 만사형통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아아 어쩌랴

잉태의 꿈이 채 오르기도 전에 열리는 자궁의 문이여

막무가내 쏟아져 나오는, 저!

 

무수한 군상群像,

이름도 없는,

 

아직 깨이지 않은 부우한 눈 꿈벅이며

서둘러 품을 뜨는 팔삭의 어린 것들

잠시의 유영을 끝내고 햇빛 밝은 지상으로 떠오르거나

더러는 어둔 질곡에 스며들어

파닥이다 파닥이다 고요히 한 숨결 접기도 하리니

어쩌면, 운명 같은 이 아뜩함이여

 

억겁의 세월 뒤에 읽혀질 머언 꿈의 자리를 찾고 있는가

아직은 더 미련이 남은 듯한 눈빛도

말이 홍수처럼 넘치는 세상에서

무슨무슨 결심이라도 하듯 앙다문 그 입술도

가벼웁게 주고받던 허접한 이야기까지도

고스란히 남겨지기 위해서는 쉿! 입을 다물라

 

먼먼 훗날에 보게 되리라

가장 낮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내력이

그 수많은 시간들로 온전히 읽혀지는 순간을

 

어디서 싸아한 바람이 분다

빙하의 차가운 바닥에 자꾸만 낮게 깔아질수록

시시각각 다가오는 맘모스의 발자국소리 쿵쿵 가까이 들린다

산 자는 살아서 지상을 꿈꾸지만

죽은 자는 죽어서 영원을 꿈꾸리니

밑으로 밑으로 침잠하여 깊을수록 덕욱 선명하게 일어서오는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오늘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때맞춰, 지하역 벽면마다 돋을새김으로 지나가는 저 직립보행들

아주 낯익은 먼-날의 살아있는 화석들을 보면서 쉼 없이

앞으로만 가야하는 굴레를 오늘 하루 허물처럼 벗어들고

이제 난 잠시 길 밖으로 나앉아 뒤를 돌아다본다

퍼덤아도 퍼담아도 채워지지 않는 언어의 목마른 샘물 같은,

 

불 꺼진 길목마다 듬성듬성 화안해진다

찬바람 속을 새벽이 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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