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쓴詩

[자작시] 내비게이터에 길을 묻다

裸談 2014. 7. 7. 14:26

 

내비게이터에 길을 묻다       -나담

 

 

<800~ >: 여기부터는 문학 동네, 푯말이 보이고 <800~802>: 소설로, 소년과 소녀의 알싸한 사랑 얘기에 취해 잠깐 ‘소나기’에 젖다가 <803~804>: 희곡로를 쑤욱 지나 <805~807>: 비평로에 접어드니 파릇한 오규원, 유종호의 집들이 보인다. 모두 다 그대로다. 익숙하게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두 블록을 더 가니 바로 811번지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도로, 까마득해 보이는 저 비탈진 언덕을 고스란히 걸어 올라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 박성룡, 박승범, 박시교, 박영교, 박운식, 박이도 ... 한참을 걷다가, 아까부터 사내는 그 자리에 붙박이로 서서 도륵또륵 눈만 굴리고 있다. 앞으로 걸어가고 싶지만 한 발짝도 더는 뗄 수가 없다. 길을 잘못 들었나? 김**801.5-김26ㅎ, 김**805.3-김73ㅈ을 보는 순간 솟구치는 현기증, 어느새 욱 자란 풀숲을 헤집으며 걷다가 오늘도 그만 미궁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주저앉을 수도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없는,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 집집마다 또렷이 걸려있는 문패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간다. 박정애, 박정원, 박종철, 박주일, 박**811.6-박53ㄱ, 박철식, 박태우, ... 여기 어디쯤인 것만 같은데 손에 쥐어든 <박**811.6-박53ㅍ>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분명 있어야할 자리에 그가 보이질 않는다. 번지수가 잘못 되었나? 아니면 잠시 동안의 외출에서 돌아오고 있는 중인가? 행보가 느린 그 대신, 사내는 빈자리에 자신을 슬쩍 밀어 넣어 본다. 없는 이름을, 한 번도 꺼내어본 적 없어 조촐한, 그럴수록 목구멍으로부터는 뜨거운 무엇이 뻗쳐오르고 한 발짝도 뗄 수 없이 자꾸만 어지러웁다. 서두를수록 듬성듬성 보이는 징검돌마저 헛짚고 미끄러져 내리기를 몇 번. 근처에서 박성룡의 ‘풀잎’들이 바람에 휘파람을 불며 통통거리고 멀리로 박목월의 ‘가정’에는 아홉 마리의 강아지 같은 것들의 재깔거림 속에 대낮부터 알전등이 환한데,

 

붉은 한낮

낯익은 동네에서도 자꾸만 길을 잃는다

헤매일수록 더욱 또렷이 각인되는

累代의 발자국들,

발목이 욱씬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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