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메모

생각10 내 아이를 내 학원에 보내는 이유

裸談 2012. 3. 24. 17:11

초등 6년 동안 자기주도 학습을 해온 아이

스스로 계획세우고 답지체크하고 설명 참고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기

그것이 나의 철칙이었다.


정작 나는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초등과정까지는 부모가 맡아서

해줄 수 있는 데까지는 해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더 높은 과정까지도 능력이 된다면야 좋겠지만 딱 거기까지

우리의 한계가 있으니.


이렇듯 우리 학원의 상담은

내가 내 아이에게 적용하는 그대로를 말해준다.

돈으로 챙길 수 없는 걸 마음으로는 챙겨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맞벌이 no!

하지만 나도 경제적인 여유 부리고 싶다.

나의 능력이 부족한지라 아내의 도움이 있다면 더 좋겠다.

그렇다고 아내도 맞벌이를 안 한 것도 아니다.

아이가 4학년 때까지는 피아노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나의 고집대로 집에서 개인레슨으로만.


밖에서 아이가 돌아오면 무조건 엄마가 먼저 맞아주는 것.

집에서 엄마가 기다리는 걸 알고 오는 것과

아무도 없는 휑한 집으로 향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함양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나는 알기에.


그랬던 아이가 이제 중1로 진학하면서

직접적인 공부는 우리의 손을 떠나야만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차로 십여분 거리

집에서 아빠의 학원까지는 차로 이십여분 거리


집에서 학교까지의 아침 등교는 내가 차로 데려다준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십여분의 소중한 시간.

하교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간식을 먹고 버스를 타거나 엄마가 차로 학원까지.

학원을 마치면 버스로 집에 간다.

아이가 버스만을 이용한다면 하루에 네 번은 타야한다.

어린 나이에 못할 짓이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영수 두 과목을 배우는데도 아이의 일상생활은 빠듯하다.

거기에 학교 숙제까지 곁들여진다면 숨통이 조여오는 걸 느낀다.

안쓰럽다.

그런데도 학부모들은 숙제 숙제를 외친다.

참으로 안쓰럽다.


나의 어린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내가 몸소 경험한 유일한 기억이므로 그래도 나는 나의 그것과 비교를 해본다.

자유가 훨씬 더 많았던 시절.


한 없이 내 아이가 안쓰럽다.

많은 부분을 감안한다해도 아이에게는 자유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놈의 무한경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부모인지라

안쓰러운 맘을 뒤로하고 적당한 페이스는 유지하길 부탁한다.

언제까지나 내가 모든 걸 책임져 줄 수도 없으므로.

언젠가는 혼자의 몸으로 아등바등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아가야 하므로.


내게는 참 좋은 선생님이 있다.

짧게는 사년을, 길게는 육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옆에 서계신다.

늘 온화한 표정으로 온화한 말씨로 아이들의 표정을 살필 줄 아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고

아이의 인생 전체를 가늠하며 지금 당장의 효과보단 먼 미래를 향한 눈빛

그래서 어리석은 어른이 아닌 현명하고도 반듯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몸짓으로

어린 나이에 한창 어리석은 짓을 하는 아이들을 향해 목청을 높여줄 수 있는 선생님들.


나는 내 선생님들이 좋다.

모든 걸 믿는다.


다른 선생님들도

개개인을 살피다보면 다들 훌륭하지만

그들의 선장이 어떤 인품을 지녔는가에 따라 방향이 사뭇 달라지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를 다른 학원에 보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아이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고로움이 있더라도

굳이 내 학원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만한 나이에 아이가 배워야 하는 것은

공부가 다는 아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