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37

나이가 들면 .최정재 [낭송.헤이데이]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고 싶은 게 많아진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이해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려 애써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나이가 들면 무조건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른으로 보이기 위해 항상 긴장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편해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 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끝없이 끝없이… 나이가 들면서 짙은 향기보다는 은은한 향기가 폭포수보다는 잔잔한 호수가 화통함보다는 그윽함이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살가움보다는 무던함이 질러가는 것보다 때로는 돌아가는 게 좋아진다. 천천히 눈을 감고 천천히 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나를 휘감아 가며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

nadamTV 2019.07.25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낭송.헤이데이]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nadamTV 2019.07.15

너를 위하여 .김남조 [낭송.헤이데이]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nadamTV 2019.07.11

그리운 이에게 .나해철 [낭송.나담]

사랑한다고 말할 걸 오랜 시간이 흘러가버렸어도 그리움은 가슴 깊이 박혀 금강석이 되었다고 말할 걸 이토록 외롭고 덧없이 홀로 선 벼랑 위에서 흔들릴 줄 알았더라면 세상의 덤불가시에 살갗을 찔리면서라도 내 잊지 못한다는 한 마디 들려줄 걸 혹여 되돌아오는 등 뒤로 차고 스산한 바람이 떠밀고 가슴을 후비었을지라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사랑이 꽃같이 남아 있다고 고백할 걸 그리운 사람에게...

nadamTV 2019.06.10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낭송.나담]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nadamTV 2019.05.27

소망 .나담 [낭송.나담]

소망 -어머니의 病床에서 낯익은 풍경들 시름시름 멀리 보이고 한 굽이 돌 때마다 풀썩 먼지처럼 떴다 잠기는 마른기침 같은 어머니 잎 다 털린 나뭇가지 어디쯤 앙상한 바람이 분다. 신음소리로 밭은 기침소리로 하루를 벗고 커튼 하나로 이웃을 이루고 사는 미처 못 다한 말들 속으로만 꿈을 꾼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밤새 뒤척이며 영근 무게 없는 것들 문을 열면 순간, 와르르 함성으로 빠져 나간다 마음은 늘 몸보다 먼저 어둠을 털어낸다

nadamTV 2019.05.20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낭송.나담]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는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nadamTV 2019.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