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37

[낭송/나담]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nadamTV 2019.05.01

[낭송/나담] 홀로 서기 .서정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 -->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 -->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 -->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 -->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 -->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nadamTV 2019.04.17

[낭송/나담] 부르면 눈물 날 것 같은 그대 .이정하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부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대의 이름이 있습니다 별이 구름에 가려졌다고 해서 반짝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대가 내 곁에 없다고 해서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랑엔 늘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구름이 끼어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디서 축복의 비가 내리겠습니까 어디서 내 마음과 그대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지개가 뜨겠습니까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https://youtu.be/NlvJcRNJKgM

nadamTV 2019.04.11

[낭송/나담] 20년 후에, 芝에게 .최승자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

nadamTV 2019.04.08

[낭송.노래/나담] 문 열어라.허형만(아버지.장사익)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님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치니 찬바람 온 몸을 때려 꼬박 뜬 눈으로 날을 샌 후 문 열어라 아버님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 문 다시 닫혔는지 어젯밤에도 문 열어라

nadamTV 2019.04.04

[낭송/나담] 얼굴 하나 .나담

사늘히 흑백으로 앉아계신 아버지 여덟 해의, 당신과의 기억으론 꿈을 꾸지 못하고 이제야, 봄 같이 터져 몽글몽글한 아지랑이 속에 마알간 얼굴 하나 아른거립니다 저 어린 것은 어느새 그때의 나를 닮아있고 그리움이 멀리 갔다 오는 날엔 오래 된 사진 속에 눈물로 머물러 햇살 가득한 날에도 비를 맞습니다 그럴 땐 웃음 뒤에서 얼만한 크기로 울었는지요 보고 또 보고 여덟 해의 기억보단 오래 남고 싶어서 새순으로 파아란 얼굴을 찬찬하게 보노라면 마디마디 스쳐가는 지난날의 내가 있고 당신의 흔적들이 가만가만 피어납니다 문을 열면 햇살은 마알간 얼굴처럼 빛나고 웃을 일만 가득-한 날에 당신을 닮아가는 얼굴 하나가 자꾸만 자꾸만 아른거립니다.

nadamTV 2019.04.01

[낭송.노래/나담] 꽃분네야.슬기둥

꽃분네야 꽃분네야 너 어디를 울며 가니 우리 엄마 산소 옆에 젖 먹으러 나는 간다 한 번 가신 우리 엄마 어디가고 못 오시나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언제 다시 오시려나 저녁 해가 저물으니 날이 새면 오시려나 그믐밤이 어두우니 달이 뜨면 오시려나 겨울날에 눈이 오니 봄이 오면 오시려나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언제 다시 오시려나

nadamTV 2019.03.29

[낭송 / 나담] (드라마)눈이 부시게 中

삶이 한낱 꿈에 불과 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nadamTV 2019.03.25

[낭송 / 나담]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정하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알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던 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nadamTV 2019.03.21

[낭송 / 나담]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적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nadamTV 2019.03.18